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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세요.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위험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차별에 맞딱뜨리는가? 여러분들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차별을 겪어왔을 것이다. 인류사적으로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핍박이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이러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가입하고 있는 ‘황금지식’이라는 카페에 내 블로그 글을 하나 올렸다. 다름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낸 글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회원분께서 피드백을 해 주셔서 이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피드백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존중합니다. 그런데 동물이든 사람이든 공통점을 찾아 분류하고 힘이나 지식, 외모 등으로 레벨을 나누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본능이 흩어진 다양성에서 정돈 된 질서를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모두가 비슷한 본능을 가지고 획일적으로 움직인다. 자청의 책, ‘역행자’에서도 나왔듯이 이러한 본능을 ‘순리자적 본능’이라고 한다. 순리자적 본능은 우리에게 굉장히 도움이 되어왔다.

하지만 어떤 본능들은 종종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책, ‘역행자’ 나와있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본인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본능이 현재 우리에게까지 각인으로 남아있다고. 과거에는 우리에게 유리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지금은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돈을 번다고 말이다. 즉 본능을 역행해야 돈을 번다는 말이다.

내가 어제 쓴 포스팅의 주제는 '다양성 존중의 중요성'이다. 찰스 다윈은 다양성이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한다. 그래서 다름은 소중한 것이다. 본능을 역행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몇 퍼센트나 될까? 아마 10%도 안될 것이다.
https://mungchung.tistory.com/m/3

넌 왜 그따구로 생겼어? 그래 너. 너 말하는거야.

이 말을 들으면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화날 것이다. 위축될 것이다. 남들과 다른 게 싫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름에 대한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다

mungchung.tistory.com

그렇다면 '역행자'들은 획일적인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집단의 다양성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집단은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나는 자청이 우리 사회를 더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자청은 '역행자 신드롬'을 일으켰다. 결론적으로 역행자들의 출현은 집단의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집단의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나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바로 ‘역행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단지 집단의 다양성을 가져왔을 뿐이지 우월한 개체는 아니다. 물론, 지금 사회에서는 역행자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역행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본인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우리 사회가 선사시대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본능을 거부하려는 ‘역행자’보다 본능에 충실한 ‘순리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사시대는 본능에 충실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더 큰 시대이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어서 지방을 축적하고 외부로부터 우리를 공개하지 않는 행동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준다.

이러한 사고실험을 통해서 ‘역행자’와 ‘순리자’는 시대 상황에 따라서 유리할 뿐 각 개체의 우월성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다르다는 것은 ‘차이’를 가져올 뿐이지 ‘우월성’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 관점에 따라 우월해보일 수는 있으나 그건 하나의 관점 뿐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는 것이다.(관점에 따라 모두 우월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 엄마 눈에는 내가 제일 잘생겨보이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받거나 권리를 침해받으면 안된다. 사람들이 이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야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대학살한 ‘홀로코스트’, 미국이 벌여온 ‘우생학’과 같이 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발생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생학’이란 ‘열등한’ 유전자를 지우기 위해 ‘열등한’사람들을 불임화시키는 학문이다. 말 그대로 임신중절수술과 정관절제술을 강제로 집행하는 학문인 것이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안 생겼으면 좋겠다. 재차 강조하고 싶다. “다르다는 것은 차이를 가져올 뿐이지 우월성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 관점에 따라 우월해보일 수는 있으나 그건 하나의 관점 뿐이라는 것.”